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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인칼럼

학꾜에서 바블 멍는다???

NEW 학꾜에서 바블 멍는다???

  • 박성숙
  • 2008-07-16
  • 49614

어린시절 ‘받아쓰기’의 혼란스러움

한 글로 적힌 책을 읽는 데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미 자신의 얘기가 아닌 것처럼 잊고 지내는 사실이 있다. 처음으로 무언가를 듣고 그것을 한글로 받아 적었을 때 느꼈던 일종의 당황스러운 감정이 그것이다. 누군가 어떤 단어나 문장을 말해 주고 이것을 그대로 받아 적으라고 한다. 그런데 그 단어 혹은 문장을 들리는 대로 적은 결과는 여지없이 꾸중을 동반했던 어린 시절의 어렴풋한 기억. 혹자에 따라서는 끝끝내 들리는 대로 적겠다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아 문제아로 낙인찍혔을 법도 한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어 보자. 선생님이 “학교에서 밥을 먹는다”라는 문장을 읽어 주었다고 가정해 보자. 지금은 어느 누구라도 이것을 ‘학교에서 밥을 먹는다’라고 아무 문제 없이 당당하게 적어 낼 것이다. 그러나 선생님의 말씀을 법과 같이 받아들이던 어린 시기에는, 물론 선행 학습이나 한글에 대한 천재적 직관으로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것을 ‘학꾜에서 바블 멍는다’라고 적고 ‘틀렸다’는 판정에 상처를 받았거나 그와 비슷했던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었을 것이라고 필자는 단언하고 싶다.

그 렇다면 ‘학꾜에서 바블 멍는다’라고 적는 것은 왜 틀렸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한글 맞춤법에 어긋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데 있어서는 국어국문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난처함을 겪고 있다는 사실은 필자를 당혹스럽게까지 한 바 있다.

이 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질문을 달리해 보자. “학교에서 밥을 먹는다”를 ‘학꾜에서 바블 멍는다’로 적지 않고 어떻게 ‘학교에서 밥을 먹는다’라고 정확하게 적어 낼 수 있었을까? 정답은 한글 맞춤법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알았을까? 그에 대한 한 가지 대답은 ‘외웠을 것’이라고 가정해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옳지 않다. 굳이 촘스키(N. Chomsky)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는 매일 매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문장들을 수없이 쏟아내고 있다. 그 많은 문장들을 모두 외우고 있을 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남은 대답은 한글 맞춤법의 ‘원리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것이 한글 맞춤법의 원리를 ‘배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뿐인 것이다.

한글 맞춤법의 두 원리

현행 한글 맞춤법의 원리는 제 1 장 총칙의 다음 부분에서 명시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제1항 한글 맞춤법은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


그 리고 그 원리는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소리대로 적는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어법에 맞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제 여기까지의 내용을 토대로 앞에서 얘기한 것을 다시 더듬어 보기로 하자. “학교에서 밥을 먹는다”’라는 문장을 ‘학꾜에서 바블 멍는다’라고 적은 것은 앞의 원칙 즉 ‘소리대로 적은’ 결과이고 이를 ‘학교에서 밥을 먹는다’라고 적은 것은 ‘어법에 맞도록 한’ 결과인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대답은 ‘학교에서 밥을 먹는다’로 적는 것이므로 이를 좀더 분석해서 살펴보면 ‘학꾜, 바블, 멍-’은 소리대로 적으면 어법에 맞지 않기 때문에 틀린 것이고 ‘에서, -는다’는 소리대로 적은 것이 다행히 어법에도 맞는 것이다. 그러니까 “학교에서 밥을 먹는다”를 ‘학꾜에서 바블 멍는다’로 적은 것은 첫 번째 원칙만을 따른 데서 생기는 잘못 때문에 틀린 문장이 되는 것이다. 다른 말로 바꾸자면 ‘학교에서 밥을 먹는다’로 적을 수 있다는 것은 때에 따라서는 소리대로 적어야 하고, 때에 따라서는 어법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한글 맞춤법의 두 원칙을 숙지(熟知)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제 남는 문제는 어떤 경우에는 소리대로 적는 원칙을 포기하느냐 하는 데 있다.


음소적 원리와 형태 음소적 원리

한 글맞춤의 두 원칙을 보다 전문적으로 말하자면 ‘소리나는 대로’는 음소적(音素的) 원리에, ‘어법에 맞도록’은 형태음소적(形態音素的) 원리에 대응된다. ‘형태음소적’이라 함은 기본이 되는 형태소를 밝혀 적어 준다는 것이다. 즉 ‘먹는다’의 ‘먹-’은 ‘먹고’에서는 ‘먹-’이지만 ‘먹는다’에서는 ‘멍-’으로 발음이 난다. 그러나 이를 ‘먹-’으로 적어도 우리의 음운 규칙 상 ‘-는다’ 앞에서는 ‘먹’의 ‘ㄱ’이 ‘ㅇ’으로 저절로 동화(同化)되므로 굳이 이를 ‘멍-’이라 적어서 ‘먹-’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일부러 희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학교’도 마찬가지이다. ‘ㄱ’ 다음의 ‘ㄱ’은 우리말의 받침 규칙에 따라 자동적으로 ‘ㄲ’으로 발음되므로 이를 ‘학꾜’로 적어 ‘학교(學校)’와 표기상 차별을 둘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소리는 비록 달리 실현되는 한이 있어도 같은 형태소라는 것을 알려 주는 것이 더 낫다는 보장이 생기면 음소적 원리를 포기하고 형태음소적 원리에 따라 표기하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사글세’ 같이 굳이 ‘삭월세’라는 것을 밝힐 필요가 없다고 판단되는 것은 형태음소적 표기를 버리고 음소적 표기를 취하면 되는 것이다.

이 를 보다 쉽게 설명해 보기로 하자. 만약 ‘食’의 의미를 가지는 ‘먹다’를, 그 소리를 중심으로 하여 ‘멍는다’로 적는다고 가정해 보기로 하자. 그렇게 되면 ‘먹다’와 ‘멍는다’의 ‘먹-’과 ‘멍-’은 표기가 달라져 같은 의미를 가지는 같은 것이라는 동일성을 확보하는 데 시각적으로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따라서 설령 발음이 예측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도 형태를 고정시켜야 할 때는 발음 나는 대로 쓰지 않는 것이다.


아이들 애꿎은 오해 없게 세심한 배려를

이 제 다시 처음으로 얘기를 되돌려 보기로 하자. 평소에 어른들의 말씀을 잘 따르던 아이가 학교에서 받아쓰기 점수가 시원치 않아 풀이 죽어 있다면 자기는 이미 알고 있는 원리를 아이는 왜 모르는지 모르겠다며 무턱대고 혼을 내서는 안 된다. 역설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 아이는 들리는 대로 적었을 뿐이고 그것은 오히려 잘했다고 칭찬을 들어야 할 사안인지도 모른다. 매를 들어 그야말로 체득(體得)하게 하거나 누구를 닮아 이렇게 문제가 많은지 모르겠다고 푸념하는 대신 눈높이를 낮추어 아이들의 입장에서 “얘와 얘는 의미가 같거든. 그런데 소리가 때에 따라 다르대. 그런데 그 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적어 주면 얘와 얘가 같은 앤지 어떻게 알겠니? 그러니까 소리는 달라도 얘들을 똑같이 하나로 적어 주어야 하는 일이 생기거든. 그러니까 그런 애들은 소리 나는 대로 적으면 안 되는 거야.”하고 자상하게 일러 주어야 할 것이다. 정말 예외적인 경우나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그 다음에 설명해 주면 될 것이다. 원리에 대한 설명도 해 주기 전에 문제시하는 것은 아이에게나 그 아이의 부모에게나 모두 득 될 것이 없다. 소중한 우리글에 대해 첫 단계에서부터 들리는 대로 쓰면 ‘틀리는’ 그런 문자라는 애꿎은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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